The History of KAWAUSA (역사)

한미여성회 총연합회 역사

1950 년 전쟁으로인해 미군은 한국을 도와주기위해 처음으로 많은 외국사람들이 한국에 주둔하게된다..그럼으로인해 자연스럽게 국제결혼은 형성되고, 이들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이민사회를 형성하고,국제결혼한 여성들의 모임인 한미여성회를 조직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다. 그 중 6 개의 한미 여성 회에서 지역별 조직을 통한 회원들의 유대를 강화하고, 정보를 교류하며, 미 주류 사회와의 징검다리 역활을 좀더 활성화 하고자 2004년 6월 23일 시카고에서 한미여성회 총연합회를 발족하였다. 초대회장에는 실비아 패튼을 추대하고 회칙을 제정하고 임원을 선출하여 국제결혼여성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았다. 2008년 7월 현재 15개지부로 확장하고 각주마다 활발한 활동을하고있다. 

한미여성총연의 결성으로 미전국에 걸쳐 여성들의 파워라인을 구축하게된 그들은 사회 봉사활동과 어려운 이웃 돕기, 혼혈인 문제에 더욱 앞장 설 것과, 또한 여성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한다. 40여년동안 한인여성들과 그 가족의 이민정착을 지원해온 각지역 한미여성회는 불우한 여성들을 위한 핫라인 개설, 가정폭력 피해여성 상담소운영, 터를 마련하기위한 기금모금행사, 사회 복지 단체 봉사, 혼혈인 이민 정착 사업 지원등을 통해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성단체로 성장하게 되며, 이민 백년의 역사 속에 진정한 봉사와 사랑의 참뜻을 심어주고 있다. 또한 국제결혼 여성들이 구성하게 되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에게 한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온 한미여성회는 그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민간 외교사절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전국적인 조직망을 이용해 한미여성총연은 2004년 추방위기에 처한 한인여성을 구명하기위해 미 정치인들에게 선처를 호소하고 서명운동을 하는등 총연이 주축이되어 구명운동을 펼친결과 기적적으로 추방을 면하게되는 결정적인 역할을하였다. 또한 혼혈인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자는 법안의 미 의회 통과를 위한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그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벌이게 된다. 이는 혼혈인들을 위한 인권운동이기도하지만 미국인들의 양심을 깨우치기위한 법안이기도하다. 한미여성회 총연합회는 각 지부의 힘을 모아 다시 한번 전국적인 캠페인을 주도해 나가며 변화와 개혁을 만들어 나가는 주역으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한미여성총연은 지역별로 국회의원에게 편지와 청원서를 미연방 하원 의원들에게 보내 이 법안이 통과되도록 동참을호소하며, 미동포사회에서만이 아닌 전세계동포들의 서명운동으로 확산했다. 이 법안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차별 받고 있는 혼혈인에게, 아버지 나라 미국에서 미국 시민권자의 자녀로 인정해 주는 뜻깊은 인권 법안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미국의 양심과 가족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법안이 될 것 으로 전망되고 있다.2004년부터 지금까지 전국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며 발로 뛰는 한인단체의 진면목을 보이고 있는 한미여성총연은 온라인서명운동을벌이며, 이법안이 통과될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세계의 양심에 호소 할것이다.

총연은또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는 한편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진출 반대 의사를 밝혔다.발표한 성명서에서 “2차 세계대전 중의 위안부 제도는 개인에게 노예와 같은 행위를 강제함으로써, 이미 국제사회에서 국제범죄로 결론이 났음에도 일본은 그 피해자들에게 아직까지 아무런 적절한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 속에 정신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반성하라”고 밝혔다. 또한, 버지니아 주당국의 함정수사로 웅담과 산삼을 구입한 한인들이 추방과 법적인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이자 한미여성총연은 주정부와 정치인들에게 함정수사의 부당함을 알리고 선처를 구하는 서한을 보내게 된다. 미국법을 몰라 이와 같은 위기를 맞게 된 한인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함께 고민해온 한미여성총연은 버지니아 수렵국과 함께 야생동식물보호법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역사회 개몽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여성을 위한 단체에서 한인 사회 그리고 이민사회를 위한 단체로 성장한 한미여성총연은 2005년 10월에 제1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를 주최하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앞으로 비전과 새로운 도약을 향한 결속을 다지게 된다. 세계에서 모인 국제결혼여성들은 그들의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세계 구석구석에서 한국을 알리고 홍보대사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실행하고있었다. 또한 한국정부에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은 물론이고 한국에 있는 혼혈인들에 대한 모든 차별 행위를 금지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줄것을 요구했다. 이는 오래동안 차별과 냉대속에서 설움받고 살아온 혼혈인들의 남모르는 아픔에 작은 희망을 심어주게 된다. 이 대회를 통해 각 나라 회원들은 그동안 터득한 이민생활의 노하우를 공개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설계했으며 각 나라의 정보를 공유하며 전문화된 여성단체의 청사진을 제시하게 된다. 또한 여성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앞장서며 민간외교관으로 한국을 올바르게 알리는데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한편, 영국의 인종차별적인 재판에 항의하며 영국대사관에 재판의 부당성을 재기하고 정당한판결을 해줄것을 요구하기도했다.그러나 국제사회의 현실은 너무나 냉혹했다. 언제나 우리가 모든사람이 평등한 세상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날이 오길 그들은 간절히 바랬다.
국제결혼여성 세계대회를 통해 국제결혼에 성공한 여성과 실패한 여성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발전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권익신장에 큰도움이 되었다. 또한, 국제결혼과 혼혈인에 대해 아직도 편견이 뿌리 깊게 박힌 한국사회가 이번 기회를 통해 인식전환과 정책연구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한미여성총연은 미주전지역에서 그 다짐을 결실로 이루어 낼때 까지 지금처럼 열심히 달릴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된다.

2006년 10월 총연에서 두번째로 주최한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에서 전세계 국제결혼여성들이 하나되는 “세계국제결혼여성 총연합회”를 발족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또한 2008년 버지니아에서 한미여성총연의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다문화 가정 2세들의 모임을 결성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게되었다. 이들의 모임이 커지면서 미주류 사회에서 한인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역활을 할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한인 영주권자가 이민국수용소에서 병마와 싸우며 암치료도 받지못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미 언론의 소식을 접하고 총연을 주축으로 미전지역의 한인사회가 구명운동을 펼치게 된다. 결국 이민국은 그녀를 2년동안 가석방조치를 취하고 암치료를 받을수있게 하였다. 총연은 고통받는 한여인을 구해내는 또한번의 중심역활을 하였다.
이사건은 이민자에 대한 이민국의 부당한 대우를 전국으로 알리며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아시안 이민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친목을 위한 단체에서 봉사의 단체로 그리고 이제는 미주류사회의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단체로 성장한 한미여성총연의 짧은역사 속에서 놀라운 변화와 결실을 맺어온 총연의 열정은 오늘도 타오르고 있다. 한인사회의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갓 이민 온 가정을 이끄는 우리의 어머니를 위해, 인간이하의 취급을받으며 차별과멸시속에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혼혈인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그리고 국제결혼으로 이중의 문화 속에서 갈등하는 다문화 가정 여성들과 자녀들을 위해 한미여성회 총연합회는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 해 나갈 것이다. 




한미여성회총연합회 연혁

2004년6월23일 창립총회

1. 혼혈인 시민권 자동부여법안 미국회통과켐패인 (아시아계 혼혈인에 대한 시민권 자동부여법안의 연방의회 통과를 위한 법사위 37명의 의원들에게 청원서보내기 등의 로비활동과 서명운동) 
2. 전국 3.000여개의 교회에 서명운동에 동참호소 서한보냄 
3. 추방위기에처한 한인여성 구명운동 (석방) 
4. 한미여성총연 홈페이지 개설 
5. 일본 정신대 피해자 배상촉구 서한 발송 
6. 혼혈인 법안 온라인 서명운동 
7. 웅담 함정수사 부당성을 미정치인들에게 항의서한보냄 (버지니아 수렵국과 야생동식물 관련법 세미나 개최) 
8. 널싱홈과 양로원 방문 봉사활동 
9.   2005년 7월 - 제1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 준비모임 (워싱톤 디시) 
10. 2005년 10월17-20일 - 제1회 국제결혼여성 세계대회 (한국에서개최) 
11. 2005년 10월 20일 - 한미여성총연 임시총회 (서울) 
12. 2005년10월 - 한국정부에 혼혈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줄것을 요청 
13. 2005년 11월 - 영국의 인종차별재판 달튼사건 재심요구서한과 서명지 미영국대사관 데이빗 메닝 대사 에게보냄 
14. 2006년 2월 - 제2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준비모임 (LA) 
15. 2006년 6월24일 - 제1차 한미여성총연 정기총회및 사회(워싱톤디시) 
16. 2006년 6월25일 - 제2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 준비모임 (워싱톤 디시) 
17. 2006년 7월 -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 결성준비모임(서울) 
18. 2006년 7월 - 양로원 방문 
19. 2006년 -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핫라인제공 (1-800-527-6529) 
20. 2006년 10월 - 제2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 서울서 개최 
21. 2006년 10월 - 세계국제결혼여성 총연합회 결성 (서울) 
22. 2007년 2월 -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 회장단회의 (하와이) 
23. 2007년 3월 - 일본 정신대결의안 채택 청원서보내기, 서명운동 동참 
24. 2007년 4월 - 위안부결의안 통과켐패인에 모금 후원 뉴욕 무지개집 방문 
25. 2007년 5월 - 아태계연합회 아시안 태평양축제 후원 
26. 2007년 7월 - 제3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 협찬 
27. 2007년 9월 - 전국 이사회 (버지니아) 
28. 2007년 10월 - 미시건 한미여성회 연례기금모금만찬 참가
29. 2008년 1월 - 아태계연합회 정책브리핑 후원
30. 2008년 3월 - 다문화가정2세들의 창립준비모임
31. 2008년 4월 - 한미여성총연 전국대회 준비보임
32. 2008년 5월 - 영선하빌 구명운동 시작 ( 7월 2일 가석방 )
33. 2008년 6월 - 한미여성총연 전국대회 (6월 20일-22일) 
34. 2008년 6월 21일 - 세계다문화가정 2세들의 모임 (다정모) 창립총회